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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눈 영국인, ‘제주 역사’에 눈 뜨다 [세계人제주] (32) 일제 군사시설 조사 나선 짐 선더스 “역사 몰라도 느낄 순 있죠…한글로 ‘역사 기사’ 쓸거에요”
기획특집
푸른 눈 영국인, ‘제주 역사’에 눈 뜨다
[세계人제주] (32) 일제 군사시설 조사 나선 짐 선더스
“역사 몰라도 느낄 순 있죠…한글로 ‘역사 기사’ 쓸거에요”
데스크승인 2011.07.19  14:10:29 조승원 | headlinejeju@headlinejeju.co.kr

제주시 동지역에 163개소의 일제 군사시설이 분포돼 있다는 내용을 담은 실태조사 보고서가 발간된 지난달, 한 외국인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제주도내 일제 군사시설에 대해 조사해보고 싶은데, 보고서를 구입할 수 없느냐고 물어왔다. 그런데 보고서는 ‘판매용’이 아니었고, 수소문 끝에 한 권을 구해 그에게 건넸다.

17일 책을 받아든 짐 선더스(28, Jim Saunders)는 방긋 웃으며 고마움을 표했다. 문득 찾아온 호기심과 궁금증. 영국인인 그가 왜 일제 군사시설에 관심을 보이고, 조사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품게 됐을까.

 

짐 선더스가 ‘역사’에 대한 그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 영국인 짐 선더스, 그는 누구?

짐은 지난 2007년 5월 울산에서 제주로 건너왔다. 지난해 공부를 위해 잠시 외국에 나갔다 온 기간을 빼면 거의 4년 가까이 제주에서 생활하고 있다.

현재 제주시내 모 영어학원에서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한국에 오기 전 영국에 있는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했다.

“제 고향에 옛 독일군이 쓰던 감옥이 있었어요. 이를 계기로 역사에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됐고, 대학 때는 영국과 독일 두 나라의 관계에 대한 논문을 쓰기도 했죠. 지금 역사가 왜 좋냐고 물어보면, 답하기 어려워요. 무조건 좋으니깐요.”

역사에 대한 관심은 옛날 사람들이 당시 어떻게 살았을까하는 ‘상상’에서 시작됐다. 역사가 서려 있는 장소에 가면 단편적인 사실을 얻어오는 게 아니라, 상상력을 발휘해 옛날 그 당시로 돌아간다고 했다.

# ‘알뜨르 비행장’에서 역사에 눈 뜨다

 

짐 선더스. <헤드라인제주>

그런 그가 제주에 와 처음 들르게 된 곳이 바로 서귀포시 대정읍 송악산 아래에 위치한 알뜨르 비행장.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중국대륙 공격을 위한 발진기지와 일본 본토를 사수하기 위한 거점으로 삼은 곳이다.

“처음으로 본 곳이 알뜨르 비행장이었는데, 그때는 한국과 일본 사이의 역사를 잘 몰랐어요. 고등학교 시절에 배우기는 했는데, 깊게 들어가지는 않았거든요. 그런데 알뜨르 비행장을 보니 한국과 일본 사이의 역사는 잘 몰라도 그 곳에서 무언가 느낄 수 있었어요.”

알뜨르 비행장을 본 뒤로 제주에 있는 일본 군사시설의 잔재를 더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로 인해 온 제주를 돌아다니게 됐다고 했다.

송악산 해안 일제 동굴진지를 비롯해 셋알오름 일제 고사포 진지, 수월봉 특공기지 등을 직접 탐방하며 제주와 일본의 역사 속으로 들어갔다. 최근에는 어승생악 일제 동굴진지를 다녀 왔다고.

“어승오름 정상에 있는 토치카를 만들기 위해 마차가 오르내렸던 길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었어요. 그 길을 만들기 위해 옛날 제주사람들이 산 아래에서부터 돌을 날랐다고 하는데, 산 아래에서 잰 돌의 무게와 위에서 잰 무게가 다르면 혼쭐이 났다는 설명을 들으면서 가슴이 짠했어요.”

이날 일제 군사시설 실태조사 보고서를 받아 페이지를 넘기던 그는 연신 탄성을 터뜨렸다. 그동안 미처 몰랐던 신세계를 발견한 듯한 표정이었다.

보고서 속 사진들을 유심히 보던 그는 “이런 역사의 현장에서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을지를 상상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새로운 사실을 알 수 있을 것만 같다”며 사진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짐 선더스가 일제 군사시설 실태조사 보고서를 훑어보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 역사 공부 위해 ‘한글’ 공부까지

나름대로 수많은 역사의 현장을 살펴봤지만, 아직도 ‘배가 고프다’는 짐. 앞으로도 현장 방문 등을 통해 제주와 일본의 관계를 더 알고 싶다고 했다.

이를 위해 한국어 공부도 열심이다. 일제 군사시설에 대한 자료는 영어로 되어 있는 것이 드물고, 대부분이 한글로 작성돼 있기 때문.

“한국을 떠나고 싶지 않아요. 앞으로도 계속 제주에 머물면서 한글을 공부하고 더 많은 역사적 사실을 알고 싶어요. 한국어를 아주 잘 하게 되면 그때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있어요.”

바로 ‘한글 기사 작성하기’다. 실제 그는 지난 1년 간 한국을 떠나 캐나다에서 언론학을 공부했다.

이보다 앞선 지난 2007년에는 마음 맞는 외국인 4명과 함께 도내 외국인들을 위한 ‘제주 라이프(Jeju Life)’라는 잡지를 제작, 발간하기도 했다.

직접 취재를 다니며 매달 8-12쪽 분량의 잡지를 만들었다. 각종 관광지나 제주 연고 축구팀인 제주유나이티드, 오름, 축제 등을 외국인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비록 지금 ‘제주 라이프’는 더 이상 발간되지 않고 있지만,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알리는 ‘메신저’에 대한 열의 만큼은 이어지고 있다.

“언젠가 제 한국어 실력이 더 유창해지면 역사 문제는 물론, 제주의 각종 현안에 대해서도 한국어로 기사를 작성해 보고 싶어요. 비록 어려운 꿈이지만 천천히 해보겠습니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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